메뉴

로그인 검색

[스페셜 리포트] 세계의 공공임대주택, 그 가능성과 사례 분석

"임대주택 건설에 대한 사회적 합의 끌어내기 위해선 주민들의 인식 전환 중요"

노정용 기자

기사입력 : 2020-08-17 07:00

유럽의 복지국가들도 자가점유율은 대체로 55~60%로서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지만 주거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유럽의 복지국가들도 자가점유율은 대체로 55~60%로서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지만 주거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사진=뉴시스
우리나라 주택보급률은 100%를 넘어 선 지 오래다. 하지만 2019년 기준 자가 거주율은 57.7%에 그치고 있다. 여기서 흔히 나오는 질문은 ‘왜 계속 집을 공급했는데, 자가거주율은 늘지 않을까?’ 혹은 ‘왜 집은 늘어났는데 아직도 집 문제로 겪는 고통이 줄어든 느낌이 들지 않을까?'다.

실제로 소득대비 주거비 부담률(RIR)은 저소득층일수록 높고, 과거보다 지금 더 높아졌으며, 자기 집을 가진 사람들은 줄어드는 가운데, 다주택자들은 늘어났다. 다주택자들 사이에서도 소수가 더 많이 가지게 되었다. 결국 집 소유 능력에 따라 돈 있는 이들이 집을 여러 채 소유하고 있기에 나머지는 집을 빌려 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유럽의 복지국가들이라 해도 자가점유율은 대체로 55~60%로서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나머지는 우리나라와 같이 동일한 세입자인데 주거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그 이유는 집을 사든 안 사든 세입자가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지국가의 관건은, 자기집을 가진 사람이 많으냐가 아니라, 세입자가 얼마나 편하게 살 수 있느냐에 있다. 물론, 여력이 있는 사람들의 자기집 마련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다 집을 구매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토지는 한정되어 있고, 집은 원래가 비싼데, 누구든지 당장 살 집은 필요하다. 그러니 예측가능한 임대료 인상률 아래 쫓겨날 걱정 없이 원하는 기간만큼 살 수 있는 부담가능한 임대주택은 주거안정을 이룩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우선 세계에서 가장 공공임대주택, 사회주택이 많다고 소문난 네덜란드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점은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사회주택 입주를 위한 대기시간이 길다. 사회주택이 전 세계에서 비중이 가장 크다고는 해도, 한번 들어가면 계속해서 살 수 있으니, 갈수록 대기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이는 두 번째와도 연관이 있는데, 네덜란드의 경우 우리나라와 다르게 님비현상이 없다. 자기 집을 사는 것보다 가난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문제없다는 반응이다. 우리나라의 ‘전세’ 정도로, 살면서 상황에 따라 누구나 거쳐갈 수 있는 주거형태라고 생각한다.

셋째는 특정한 월세수준 이하는 똑같은 규제를 받는다. 개인 소유라도 2017년 기준 월세 711유로(약 90만 원) 이하 주택은 임대료와 인상률 통제를 받는데다, 심지어 우리나라처럼 1~2년 단위 계약이 아닌 무기계약이다. 불장난을 한다거나 불법행위를 하는 등 몇 가지 경우 외에는 집주인은 계약을 종료할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사회주택과 민간주택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단일임대모델'의 주택체제다. 이는 사회주택의 비중이 전체의 30%가 넘으니까 가능하다.

최근 국내에서도 큰 사회적 이슈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분양세대와 임대세대가 혼재하는 소셜믹스의 사례다. 해외에서도 재정난과 슬럼화 등 각종 부작용을 거친 복지국가들도 소셜믹스에 대한 실패를 거듭했다. 계층 간 갈등으로 폭동까지 겪으면서 우여곡절을 겪었다. 학자들은 폭동의 원인에 대해 이민자와 취약계층을 임대주택단지에 모여 살게 되며 발생한 ‘세그리게이션(segregation)’, 즉 계층의 공간적 분리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한다.

이에 반해 네덜란드는 소셜믹스가 성공적으로 정착한 나라다. 비결은 저렴한 임대료로 계층 구분 없이 누구나 입주할 수 있다 보니 다양한 계층이 자연스럽게 섞이고 소셜믹스가 이뤄졌다. 여기에 사회주택을 포함한 공공임대주택 거주자에 대해 정부가 월세의 일정 부분을 지원하니 주거에 대한 부담이 없다. 이는 임대를 공공의 영역으로 넣고 취약계층에 선별적으로 공급하는 우리의 방식과는 거리가 있다. 사회주택 속에 소셜믹스가 담겨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계층 화합이 이뤄져 갈등을 찾아볼 수 없다. 공교롭게도 사회주택 비중이 네덜란드에 이어 세계 2, 3위인 오스트리아, 덴마크에서도 비슷한 상황이다.

사회주택이 사회통합의 원인인지 결과인지, 아니면 별도의 매개변수가 있는지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겠으나, 사회통합과 긴밀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네덜란드는 사회주택의 역사만 100년이 넘었고 여러 단계를 거쳐 왔다. 초창기에는 정부지원이 많았지만, 사회분야가 성장한 결과 WSW라는 상호연대기금으로 1차 보증하고, 2차로 정부가 지원하는 체제가 정착했다. 현재 사회주택공급자들인 보닝코포라시(Woningcorporatie), 한국말로 ‘주택협회’들이 갹출해 조성한 기금 규모만 90조 원 수준이다.

한편 저렴한 공공임대주택을 거부하는 님비 현상은 비단 한국, 또는 네덜란드만의 현상이 아니다. 미국은 한국보다 먼저 이 현상을 경험해왔고, 주정부와 시정부, 공공기관을 불문하고 원활한 저렴주택 공급을 위한 다각적 노력을 기울여 왔다. 다음은 미국의 사례다.

◇ 매사추세츠 주 저렴주택공급 의제처리법(Chapter 40B)

메사추세츠 교외 지역의 저렴주택 공급은 인종 문제와 결합되면서 극심한 사회문제로 발전했다. 특히 교외 지역의 용도지역제는 저렴주택 확보를 저해하는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주택개발업자가 저렴주택을 공급하고자 할 때 배타적 조닝을 넘어설 수 있는 제도의 필요성이 생기게 되었다. 이에 메사추세츠주 의회는 1969년 저렴주택공급 의제처리법을 통과시켜 개발자가 배타적 조닝을 통과할 수 있는 권한을 제공했다.

특히 최소 필지 면적 규정 및 최대 밀도 규정을 활용하여, 저렴주택 공급을 어렵게 하였던 교외 지역에 저렴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법률적 기초가 되었다.



캘리포니아 주택기본법

1969년 법제화된 캘리포니아 주택기본법은 주거 기회 확장 및 주거수요 충족을 위해 저소득층 가구를 위한 주택을 건설함을 목적으로 하며, 캘리포니아의 모든 도시 및 카운티가 주택수요를 충족시킬 세부 계획안을 마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주택기본법은 다른 주들과 달리 저소득 가구를 위한 주택의 지리적 분포를 강조하며, 개별 시가 상황에 따라 용도지역제를 재조정하도록 하여 미래의 도시 성장을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저렴주택 개발을 위한 재원 조달을 위해 주거용도와 상업용도를 적절하게 배분하도록 하고 있다.


일리노이 주 저렴주택 계획 및 항소법

시카고는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로 여타의 미국 대도시와 마찬가지로 도심지보다는 교외 지역의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해왔다. 하지만 주택 공급의 속도는 인구증가 속도에 미치지 못해, 2000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물가가 조정된 시카고 지역 중위 주택가격은 1990~2001년 사이 37%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저렴주택 공급은 매우 저조하여 1990~2000년 전체 주택 재고가 9.5% 증가한 반면, 임대주택으은 0.7%증가하는 데 그쳤다. 시카고 지역의 주택가격 상승 원인은 신규개발 규제정책이었다.

용도지역규제, 건축 규제, 단지설계 규제 등이 주택개발 비용을 상승시켰다. 이러한 규제의 목적은 부동산 가치 보호, 교통혼잡 방지, 지방 세수입 유지 및 증대, 인구증가에 따른 기반시설 과부하 방지 등이다. 그 결과 저렴주택 공급은 자연스럽게 배제되었고 저렴주택 부족은 지역사회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에 일리노이주 의회는 저렴주택 공급 활성화를 위해 2004년 저렴주택 계획 및 항소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지방정부 단위에서 저렴주택 계획 및 개발을 의무화하고 저렴주택 개발을 저해하는 카운티 정부 및 시 정부의 지역조례 및 규제를 완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연간 저렴주택 재고 비율을 10%선을 유지하는 인구 5000명 이상의 도시를 제외한 모든 지방정부가 제출해야 하는 저렴주택 계획에는 저렴주택 비율 기준, 적합한 택지, 기존 주택을 저렴주택으로 전환할 경우의 변경 계획, 저렴주택 사업을 담당할 개발업자, 저렴주택 공급 활성화를 위한 인센티브 수단 등을 담아야 한다.



위에서 열거한 법들 외에 미국은 님비 완화를 위한 온라인 정보공유 플랫폼 역시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 연방정부 주택도시국(HUD)인데 여기서는 저렴주택 관련 자료를 공유하고, 저렴주택 관련 정책이 주택가격, 지역의 고용시장(일자리), 경제성장, 지역의 재정건전성 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또한 정책개발과 연구를 담당하는 별도의 기관을 운영하여 주택시장 분석, 지역별 소득 및 임대료, 공정임대료 등의 원자료와 이를 활용한 보고서를 제공하고 있다. HUD는 저렴주택 관련 최신 정보를 담은 'EDGE'라는 별도의 온라인 잡지 역시 발행하고 있디. 그 외 학생들을 대상으로 저렵주택 개선을 위한 디자인 대회를 개최하여 커뮤니티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고, 저렴주택의 개선과 공급 활성화에 기여한 주체를 대상으로 시상을 하여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시민 참여를 이끌어내고 있다.



도시지역에서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을 배제하는 님비현상은 보편적 현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정책적으로 자가소유를 지원해온 결과, 자가 주택 선호가 높을 뿐만 아니라 보유자산 중 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 주택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되는 외부 변화에 유독 민감할 수밖에 없다.

임대주택이 지역사회와 갈등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의 상대가 되기 위해서는 임대주택의 수요, 공급, 배분의 과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우선 임대주택의 수요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제도의 보완이 요구된다. 임대주택 수요를 시군구별로 면밀하게 파악하고, 지속적인 자료 확보와 모니터링을 수행하기 위한 법제도적 근거와 예산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임대주택의 공급을 위해서는 민관 협력이 요구되는데, 이를 위해 공급방식 및 공급유형이 다양화되고 참여 유인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임대주택 배분과 관련해서는 공급의 주체, 그리고 지속가능한 공급을 위한 권한의 분배 또는 위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또한 입주자 선정 조건을 면밀히 검토하도록 하여 공급주체가 임대주택에 대한 책임감을 갖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임대주택 건설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인식 전환이 가장 중요하다. 지역의 주민들이 초기부터 자신들의 의견을 자유롭게 제시할 수 있도록 소통의 창구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며, 또한 해당 지역뿐 아니라 전체 시민을 대상으로 임대주택에 대한 교육, 홍보 등을 실시하여 임대주택을 지역의 부담이 아닌 지역의 자산으로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노정용 기자 noja@g-enews.com

공유하기

닫기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톡
트위터

텍스트 크기 조정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