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후반기 우리나라 신발·봉제 기업들은 인도네시아로 대거 몰려갔다. 우리나라에서 민주화에 따른 노동쟁의 증가, 임금상승에 따른 제조비용 상승이 주요 원인이다. 이로 인해 1980년대 중반기 1500명 정도의 현지 한인 수가 1990년대 초에는 1만 명에 육박한다. 1990년 전후로 인도네시아 한인공동체는 양적으로 팽창하면서 큰 변혁기를 맞았고, 인도네시아 경제와 사회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30년이 넘게 인도네시아 신발업종에서 종사하고 있는 하연수씨는 "1980년대 후반기에 한상기업인 코린도 그룹이 인도네시아에서 처음으로 한국계 스포츠화 제조업체인 '가루다인다와'(브랜드명 이글)를 가동했다”며 “우리 신발업체들이 1980년대 후반기 어쩔 수 없이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겨야 할 시점에 가루다인다와는 해외 이전을 앞둔 한국 신발업체에 표준이 됐다고 회고했다.
초창기부터 가루다인도와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하씨는 “1980년대 한국 스포츠화 제조업이 세계 패권을 잡았으나, 이제는 대만에 넘어갔다”며 “인도네시아에서 그 영광을 되찾기를 바란다”고 말문을 열었다.
인도네시아 진출 초창기에 한국계 신발업체들은 OEM(주문자제조) 방식으로 수출 중심의 생산을 하면서도, 당찬 포부를 안고 자체 내수 브랜드를 키우기도 했다. 가루다인다와는 '이글(Eagle)', 동조인도네시아는 '스포텍(Spotec)' 그리고 태화인도네시아는 랑포드(Langford) 등이 그것이다.
윤범수씨는 “1980년대 후반기에 인도네시아에서 처음 공장을 가동할 때 현지 언어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고, 작업공정에 대한 인도네시아어 표준설명서가 없어서 현지 직원과 갈등과 마찰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설명했다.
이종윤씨는 “최근 주요 스포츠화 바이어들의 탈중국이 가속화되고 주문이 인도네시아로 넘어오고 있다”며 “향후 10년 이상 인도네시아에서 스포츠화 산업이 활황을 이룰 것”이라고 전망했다.
1980년대 후반기 신발업종과 함께 같은 시기에 봉제업종도 인도네시아에 진출해 현지 한인사회에 양대 산맥을 형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효건 전 한인회장은 “1990년 전후로 한국 봉제업계가 인도네시아에 처음 진출해 생산성이 기대 못 미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며 “이제는 한국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직원들은 숙련됐을 뿐만 아니라 책임감과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급 인재로 성장해 각 회사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완주 전 한인회장은 1988년부터 한국 봉제업체들은 주로 상사를 중심으로 인도네시아에 먼저 진출했는데, 이는 앞서 상사들이 목재 등 다양한 사업을 인도네시아에서 펼치면서 현지에 대한 정보와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며, 다른 동남아 국가 가운데에서도 인도네시아를 투자지로 낙점한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노정용 기자 noja@g-enews.com